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영화

그 놈들 참 구차하다. <지리멸렬>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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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리멸렬

 

감독 : 봉준호

출연 : 유연수, 신동환, 김선화

 

 

우리사회에서 누구나 꿈꾸는 엘리트들, 신문사 논설위원, 대학교수, 검사 등의 위선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담아낸 영화이다. 그 가운데 위트있는 요소를 넣어서 그 조롱의 강도는 더욱 커졌다.

 

그러나 생각해본다. 봉준호가 말하려고 했던 건 그 엘리트들의 위선적인 모습이었을까, 엘리트들의 인간적인 모습이었을까, 누구나 완벽한 사람은 없다. 그렇게 술먹고 밥통에 똥을 싸던 아침운동 중 남의 우유를 훔쳐먹고 야한사진 몰래 보고 야한 상상하는 일을 난 참 인간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한다. (물론 밥통에 똥을 싸는 건.. 좀 아니지만) 이건 관점의 차이라고 본다.

 

우리사회에서 엘리트들이 나와서 그렇게 위선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건 난 다른 관점에서 봤을 때 일반인(엘리트와 반대되는 중립적 개념)이 엘리트들에게 원하는 것일 수 있다. 완벽한 사람만이 완벽한 모습을 보여야만 한다면 이 세상에 나와서 잘난 소리 하는 사람을 아무도 없을 것이다. 이런 주장은 엘리트들의 변명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.

 

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자. 주제에 대한 반대의견은 이정도로만 하자.

 

<지리멸렬>을 보고 가장 먼저 생각난 것 하나. 이 영화가 <플란다스의 개>의 기초가 되었고 지금의 <살인의 추억> 상업적인 색깔이 흠씬 스며든 작품이라는 것.

 

봉준호는 참 영화를 기가 막히게 잘만드는 사람이다. 작가라고 불러도 될만큼의 뛰어난 이야기짜임새, 치밀한 연출력, 대중과 공감하는 상업적 능력까지 지금 시대에 봉준호와 같이 자기 색깔을 내며 성공하는 영화 만드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. 하지만 그 흔히 말하는 자기 색깔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상업논리에 의해 무뎌지고 있는 듯 하다. 사실 <플란다스의 개>는 개봉하고 완전 망했다. 초기 평론가들에게도 봉준호의 능력과 영화의 숨은 의미를 찾지 못한 채 묻혀갔지만 다행히 해외에서 호평을 받았다. 데뷔작의 실패?로 봉준호는 차기작으로 <살인의 추억>을 만들게 되고 대성공을 거두게 돼 그 후광을 아직도 받고 있다. (물론 계속되는 작가활동을 하고 있다) 그러나 <살인의 추억>은 봉준호의 특기인 블랙코미디적 요소보다는 대중이 '대중적'으로 원하는 요소들, 극적 반전, 말초적 흥미(싸우고 때리고), 캐릭터들에 대한 연민, 등의 요소가 히트작 <살인의 추억>을 만들어냈다. 그러나 봉준호의 특기는 따로 있다. 바로 코미디다. <플란다스의 개> <지리멸렬> 등에서 표현됐던 사회의 부조리, 공공의 위선자들에 대한 날카롭고 기분더러운 블랙코미디의 느낌은 점점 무뎌간다.

 

박찬욱감독이 초기 영화들 싹다 망하고 <JSA> 성공뒤, 복수 3부작으로 하이고어드라마/코미디로 자기 색깔로 세계적인 성공을 벌이는 것을 본받아 봉준호도 <괴물>만 만들고 본래 색깔을 찾아갔으면 한다. 뭐 봉감독이 그동안 자기의 특기가 코미디가 아니라 스릴러쪽이었다고 다시 깨달았으면 어쩔 수 없는 거다.

 

단지 난 유명감독들의 취미생활을 볼 생각은 그다지 없다. 난 특기를 보고 싶을 뿐이다.

 

또 봉준호에 대한 칼럼이 되어버렸다. 영화를 보고 난 느낌을 말하고 싶었는데 또 다른 길로 빠졌다. 그러니까 <지리멸렬>은 간단히 말해. 관객과 소통하는 주제의 유연함을 블랙코미디로 표현했고 그 주제는 정확히 관객들의 가슴에 꽃히며 쓰디쓴 웃음을 나오게 했으며

90년대 초반 대학생이 만든 거라 기술력에서는 미비했지만 주제나 구성력면에서는 괄목할 만 했다.

 

아주 굿이었고 중요한 건 지금에 와서도 <지리멸렬>을 내가 보고 잘만들었다하는 것은 기술력이 아니라 표현력과 구성력, 이야기 능력이었단 걸 또 한번 다시 깨달았다.


2005/12/20 11:01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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